심각한 사회갈등, 대부분 세계관 갈등
세계관은 세상에 대한 이해와 해석, 그리고 작동 방식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모든 개인과 집단은 각자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세상을 보는 태도와 일상의 일에 대응하는 행동을 결정하고 동시에 타인과 타집단의 태도와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세계관은 어떤 일이나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계관 갈등(worldview conflict)은 세계관 차이가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일 때, 또는 그것이 갈등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때 발생한다.
세계관 갈등 연구자인 제인 세미네어 도처티(Jayne Seminare Docherty)는 세계관 갈등을 다룬 그녀의 책 <Learning Lessons from Waco: When the Parties Bring Their Gods to the Negotiation Table (2001, Syracuse University Press 출판)>에서 세계관과 관련해 우리가 일상에서 직면하는 갈등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당사자 간 세계관 문제가 해결된 갈등, 두 번째는 당사자 간 세계관 문제가 부분적으로 해결된 갈등, 그리고 세 번째는 당사자 간 세계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다. 세계관 문제가 해결된 갈등이란 당사자들의 세계관이 비슷해서 세계관 차이가 갈등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세계관 문제가 부분적으로 해결된 갈등은 당사자들의 세계관이 일부분 겹치는 경우를 말하며 이런 경우 세계관을 둘러싼 대결은 제한적일 수 있다. 세계관이 가장 큰 도전이 되는 경우는 세 번째로 당사자들의 세계관이 완전히 다르고 공유하는 부분이 없어서 세계관 차이가 갈등의 발생과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고 해결에도 장애로 작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첨예한 대결이 계속되는 많은 갈등,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사회 갈등은 대부분 세 번째 경우다. 경제적 이익이나 사회적 역할을 둘러싼 이견이 심각한 갈등이어도 당사자 간 세계관 차이가 거의 없다면 양측이 합의한 기준에 따라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갈등을 일단락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러나 세계관이 전혀 다른 당사자들이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면 해결 가능성은 한층 낮아진다. 각자의 세계관이 대립에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고 다른 세계관을 중심에 두고 상호 비난과 인정 거부가 계속되면 해결 가능성을 높이는 대화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가사 노동 분담을 두고 부부 사이에 생긴 갈등이 남편과 아내의 역할, 나아가 남성과 여성의 역할 인식과 실행을 보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회갈등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원자력발전소 건설 갈등, 젠더 갈등, 노사 갈등, 낙태법 제정,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대결하는 두 진영의 대립하는 세계관에 기반한 문제 인식과 해결 방식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고 강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코 사건으로 분석한 세계관 갈등
도처티가 자신의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건 세 번째로 당사자들이 전혀 다르고 강하게 대립하는 세계관으로 인해 갈등이 위기로 치닫는 경우다. 그녀는 세계관 갈등 분석을 위해 1993년 봄 미국 텍사스주 와코(Waco)에서 있었던 FBI와 최후의 날에 대한 신의 계시를 기다리며 공동생활을 하던 브랜치 다비디안(Branch Davidian)이라고 불린 종교 공동체 간 대결과 협상 과정을 사례로 다뤘다. 두 집단의 다른 세계관과 그로 인한 갈등은 각 당사자 집단의 행동, 그리고 그런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언어와 표현을 통해 확인됐다.
사건은 미 재무부의 주류.담배.화기단속국(ATF)이 브랜치 다비디안이 소유한 총기 및 화기의 불법성을 확인하고 영장 집행을 위해 이 종교 공동체를 급습하면서 시작됐다. 브랜치 다비디안은 공동체 수색을 위해 진입하려던 ATF에 저항했고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그 결과 ATF 요원 4명이 사망하고 2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브랜치 다비디안 측에서도 한 명의 사망자와 여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대치가 시작됐고 FBI가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51일 동안의 협상은 결국 실패했고 FBI는 무력을 동원해 건물을 불태우며 강제 진압을 했다. 그 결과 공동체 안에 있었던 대다수 브랜치 다비디안 주민이 사망했다. 여기에는 21명의 어린이와 2명의 임산부도 포함돼 있었다.
도처티는 이 비극적 결말의 원인으로 세계관 갈등을 지목한다. 특히 협상을 진행한 FBI가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한 세계관 충돌의 심각성 또한 인식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한다. FBI는 자신의, 나아가 미국 주류 사회의 세계관에 따라 브랜치 다비디안의 행동과 상황을 판단했다. 그녀가 초점을 맞춘 건 브랜치 다비디안이 컬트 종교 집단인지 또는 불법 총기와 화기를 소유한 위험한 공동체인지가 아니라 지도자와 공동체 구성원들이 바깥 세계와는 다른 그들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FBI가 그들만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FBI의 세계관을 고집해 협상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결국 많은 생명을 잃었다는 점이다.
FBI와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 갈등을 가장 잘 보여준 건 상황에 대한 판단이었다. FBI는 ATF의 급습과 무력 충돌은 합법적인 행위이고 브랜치 다비디안은 합법적 절차에 복종하고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FBI는 당연하게 법 집행 기관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FBI는 또한 브랜치 다비디안을 상식을 벗어난 컬트 집단으로 보고 그들의 공동체 생활을 위험하고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았다. FBI의 세계관에 따르면 브랜치 다비디안의 상식적 행동은 정부 권한을 수용하고 순순히 체포에 응하고 법정에 서는 것이었다. FBI는 이와 정반대로 행동한 브랜치 다비디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앞의 책 pp.65-66).
브랜치 다비디안은 ATF의 급습과 영장 집행 시도를 개인의 자유와 관련한 규범의 위반이자 정부 권한의 과도한 사용으로 해석했다. 그러므로 ATF에 대한 공동체의 저항은 자기 보호를 위한 합법적인 행위였고 정부 기관의 바람대로 체포돼 법정에 서는 건 전혀 합당하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브랜치 다비디안 주민들은 자신들이 신의 왕국(God’s Kingdom)이 도래하기 전 최후의 날들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향후 심판에 직면하게 될 세속적인 권력에 협력할 동기가 없었다 (앞의 책 p.66).
협상에서 드러난 세계관 갈등
협상 과정에서 교환된 말을 보면 양측이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립했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례로 FBI는 아이들을 우선 보호 대상으로 보고 그들의 ‘탈출’을 첫 목표로 삼았다. 브랜치 다비디안은 이에 대한 대가로 지도자인 데이빗 코레시(David Koresh) 연설의 방송을 요구했다. 브랜치 다비디안은 공동체가 ATF의 임박한 공격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알리고 자신들이 직면한 상황을 미국인들에게 직접 설명하기 위해 이 거래를 선택했다. 또한 공동체가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봉쇄로 공동체가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부모들의 결정에 따라 아이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거래의 결과로 일부 아이들은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졌다 (앞의 책 pp.163-164).
양측은 위험 인식에 대한 차이를 드러냈고 이 차이는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FBI는 브랜치 다비디안 공동체가 아이들에게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브랜치 다비디안 주민들은 바깥 세계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인식했다. 그들은 바깥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종교적으로 금지된 음식이 제공되고, 아이들이 심리학자들과 사회복지사들의 감시에 둘러싸이고, 세상의 유해한 영향에 노출되는 걸 두려워했다. 때문에 협상 초기에 일부 아이들을 내보낸 뒤 더는 아이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앞의 책 pp.176-177).
이후 어려운 협상이 뒤따랐고 이를 통해 FBI와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 차이가 보다 확실하게 드러냈다. FBI는 일부 아이들의 ‘탈출’ 후 이번에는 여성과 아이들을 함께 내보내라고 요구했고 이를 통해 다시 두 개의 세계관이 충돌했다. FBI는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그리고 동시에 거래 카드(barganing chip)로 보았다. 또한 여성들이 지도자인 코레시의 ‘협박’ 내지 ‘강요’로 인질처럼 잡혀있다는 생각으로 이 여성들을 내보내는 결정을 하라고 촉구했다. FBI는 브랜치 다비디안 사례가 다른 인질 사례와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다른 한편 인질 구출 작전에서 얻은 경험을 그대로 적용했다.
브랜치 다비디안과 코레시는 이런 FBI의 인식과 주장에 반발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공동체 주민 중 누구도 협상 카드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각 개인을 독립적 결정권을 가진 도덕적 행위자(moral agent)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레시는 FBI 협상가들에게 “난 그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 스스로 원하면 그렇게 할 수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FBI가 일부 아이들을 내보낸 것처럼 결정을 내릴 것을 요구하자 코레시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부모들이 결정을 내렸지만 성인 여성들은 다르다고 말했다. FBI가 여성들을 아이들과 함께 내보내는 결정을 하라고 거듭 요구하자 코레시는 급기야 “그만두자. 이 게임을 하고 싶지 않다”며 협상을 거부했다 (앞의 책 pp.174-176).
FBI는 여성들을 인질로, 그리고 결정권을 박탈당한 연약한 존재로 인식했지만 브랜치 다비디안 공동체에서 여성들은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았다. FBI의 세계관은 오랫동안 자주 경험한 인질 상황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었고,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은 스스로 선택한 종교 공동체 생활을 통해 형성된 것이었다. 두 개의 세계관은 강하게 충돌했고 협상 실패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며 결국 비극적 결말을 야기했다.
와코 사건 협상은 두 가지를 말해준다. 하나는 세계관의 차이가 갈등 해결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이다. 양측은 세계관 차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며 그 결과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세계관 차이가 힘의 불균형 상황과 결합할 때 생기는 갈등 해결의 어려움이다. FBI의 세계관은 미국 주류 사회의 세계관이었고 때문에 협상에서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다른 한편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은 종교적으로 이단적이고 또한 반사회적으로 여겨져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때문에 브랜치 다비디안은 자신의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FBI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FBI는 사회적 지지를 업고 자기 세계관을 유지하고 브랜치 다비디안에게 이의 수용을 압박했다. 이는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는 세계관 차이로 인한 어려움이 당사자들에게 동등한 어려움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힘이 적은 당사자는 대화와 협상에서 자기 세계관을 주장하고 설명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주목할 건 FBI는 우월적 위치에서 자기 세계관을 유지하고 부과하는 데 상대적으로 덜 어려움을 겪었지만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해 결국 자신들의 목표인 인명 구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브랜치 다비디안 또한 FBI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인정하지도 않아 효율적인 협상을 하지 못했다. 양측 모두 세계관 차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고 여기에 힘의 불균형 상황까지 존재해 협상이 어려워졌고 대치 상태가 해결되지 못했다.
갈등 해결의 열쇠, 세계관의 상호 인정
와코 사건 분석을 통해 도처티가 주장하는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갈등 해결을 모색할 때, 또는 본격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진행할 때 세계관 차이가 있는지,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우선 탐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관 차이는 결국 당사자들의 현실 인식에 대한 것이므로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으면 대화와 협상을 통한 갈등 해결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다. 도처티에 따르면 당사자들의 세계관이 완전히 달라서 대립적일 때 당사자들은 우선 자기 세계관에 기반한 각자의 현실을 두고 협상(현실 협상/negotiating reality)을 하게 되고 이 협상이 성공적으로 일단락되면 구체적 갈등 사안에 대한 협상(이슈 협상/issue-specific negotiation)을 할 수 있게 된다. 당사자들은 갈등 진행 내내 이런 현실 협상과 이슈 협상을 오가면서 갈등을 다루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세계관 차이가 갈등에 원인을 제공하고 이것이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와 협상에 걸림돌이 되는 사례는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가 사회갈등으로 진화했을 때 자주 나타난다. 원자력발전소 안전과 건설, 차별금지법 제정, 낙태법 제정, 젠더 갈등, 존엄사, 기후변화 대응 및 재생에너지 확대 방안 등이 모두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되고 세계관이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갈등이다. 이런 사회갈등은 정치 및 이념을 둘러싼 세계관과도 관련되어 있어서 세계관 차이를 다루지 않고는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의 시작조차 힘들다.
대형 사회갈등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 간 갈등도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모든 갈등은 결국 당사자들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고 다만 당사자들이 세계관을 공유하느냐,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세계관 차이로 인한 갈등은 많을 수밖에 없다. 가족 내 가부장 제도 및 문화와 그에 따른 성역할과 관련해 발생하는 가족 구성원 간 갈등, 직장 내 회식 문화나 집단 활동을 둘러싼 집단주의 성향 문화와 개인주의 성향 문화 간 충돌과 관련된 갈등, 성역할 및 성평등과 관련해 청년 집단에서 생기는 대립 등이 모두 세계관 차이와 관련되어 있다.
이런 갈등은 세계관 차이와 관련되어 있지만 모두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현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관 차이를 다루지 않고는 현안 논의와 해결 모색이 불가능하다. 결국 관건은 어떻게 세계관 차이를 뛰어넘어 현안에 대한 대화와 협상을 시작할 상황을 만드느냐다. 이에 대한 접근을 설명한 것이 앞서 언급한 현실 협상과 이슈 협상이다. 갈등 당사자들은 실질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선 자신들의 세계관이 전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세계관과 관련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나아가 상대의 다른 세계관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런 상호 존중과 인정이 있어야 세계관 차이를 염두에 두고 해결해야 할 현안을 논의할 수 있다. 세계관 차이는 현안 논의 중에도 시시때때로 등장하고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그런 상황이 억압이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느냐는 결국 얼마나 잘 세계관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상대의 세계관을 존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심각한 사회갈등, 대부분 세계관 갈등
세계관은 세상에 대한 이해와 해석, 그리고 작동 방식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모든 개인과 집단은 각자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세상을 보는 태도와 일상의 일에 대응하는 행동을 결정하고 동시에 타인과 타집단의 태도와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세계관은 어떤 일이나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계관 갈등(worldview conflict)은 세계관 차이가 대립의 근본적인 원인일 때, 또는 그것이 갈등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때 발생한다.
세계관 갈등 연구자인 제인 세미네어 도처티(Jayne Seminare Docherty)는 세계관 갈등을 다룬 그녀의 책 <Learning Lessons from Waco: When the Parties Bring Their Gods to the Negotiation Table (2001, Syracuse University Press 출판)>에서 세계관과 관련해 우리가 일상에서 직면하는 갈등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당사자 간 세계관 문제가 해결된 갈등, 두 번째는 당사자 간 세계관 문제가 부분적으로 해결된 갈등, 그리고 세 번째는 당사자 간 세계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다. 세계관 문제가 해결된 갈등이란 당사자들의 세계관이 비슷해서 세계관 차이가 갈등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세계관 문제가 부분적으로 해결된 갈등은 당사자들의 세계관이 일부분 겹치는 경우를 말하며 이런 경우 세계관을 둘러싼 대결은 제한적일 수 있다. 세계관이 가장 큰 도전이 되는 경우는 세 번째로 당사자들의 세계관이 완전히 다르고 공유하는 부분이 없어서 세계관 차이가 갈등의 발생과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고 해결에도 장애로 작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첨예한 대결이 계속되는 많은 갈등,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사회 갈등은 대부분 세 번째 경우다. 경제적 이익이나 사회적 역할을 둘러싼 이견이 심각한 갈등이어도 당사자 간 세계관 차이가 거의 없다면 양측이 합의한 기준에 따라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갈등을 일단락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러나 세계관이 전혀 다른 당사자들이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면 해결 가능성은 한층 낮아진다. 각자의 세계관이 대립에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고 다른 세계관을 중심에 두고 상호 비난과 인정 거부가 계속되면 해결 가능성을 높이는 대화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가사 노동 분담을 두고 부부 사이에 생긴 갈등이 남편과 아내의 역할, 나아가 남성과 여성의 역할 인식과 실행을 보는 세계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회갈등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원자력발전소 건설 갈등, 젠더 갈등, 노사 갈등, 낙태법 제정,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대결하는 두 진영의 대립하는 세계관에 기반한 문제 인식과 해결 방식에 대한 이견이 존재하고 강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코 사건으로 분석한 세계관 갈등
도처티가 자신의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건 세 번째로 당사자들이 전혀 다르고 강하게 대립하는 세계관으로 인해 갈등이 위기로 치닫는 경우다. 그녀는 세계관 갈등 분석을 위해 1993년 봄 미국 텍사스주 와코(Waco)에서 있었던 FBI와 최후의 날에 대한 신의 계시를 기다리며 공동생활을 하던 브랜치 다비디안(Branch Davidian)이라고 불린 종교 공동체 간 대결과 협상 과정을 사례로 다뤘다. 두 집단의 다른 세계관과 그로 인한 갈등은 각 당사자 집단의 행동, 그리고 그런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언어와 표현을 통해 확인됐다.
사건은 미 재무부의 주류.담배.화기단속국(ATF)이 브랜치 다비디안이 소유한 총기 및 화기의 불법성을 확인하고 영장 집행을 위해 이 종교 공동체를 급습하면서 시작됐다. 브랜치 다비디안은 공동체 수색을 위해 진입하려던 ATF에 저항했고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그 결과 ATF 요원 4명이 사망하고 2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브랜치 다비디안 측에서도 한 명의 사망자와 여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대치가 시작됐고 FBI가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51일 동안의 협상은 결국 실패했고 FBI는 무력을 동원해 건물을 불태우며 강제 진압을 했다. 그 결과 공동체 안에 있었던 대다수 브랜치 다비디안 주민이 사망했다. 여기에는 21명의 어린이와 2명의 임산부도 포함돼 있었다.
도처티는 이 비극적 결말의 원인으로 세계관 갈등을 지목한다. 특히 협상을 진행한 FBI가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한 세계관 충돌의 심각성 또한 인식하지 못했던 점을 지적한다. FBI는 자신의, 나아가 미국 주류 사회의 세계관에 따라 브랜치 다비디안의 행동과 상황을 판단했다. 그녀가 초점을 맞춘 건 브랜치 다비디안이 컬트 종교 집단인지 또는 불법 총기와 화기를 소유한 위험한 공동체인지가 아니라 지도자와 공동체 구성원들이 바깥 세계와는 다른 그들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FBI가 그들만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FBI의 세계관을 고집해 협상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결국 많은 생명을 잃었다는 점이다.
FBI와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 갈등을 가장 잘 보여준 건 상황에 대한 판단이었다. FBI는 ATF의 급습과 무력 충돌은 합법적인 행위이고 브랜치 다비디안은 합법적 절차에 복종하고 협력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FBI는 당연하게 법 집행 기관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FBI는 또한 브랜치 다비디안을 상식을 벗어난 컬트 집단으로 보고 그들의 공동체 생활을 위험하고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았다. FBI의 세계관에 따르면 브랜치 다비디안의 상식적 행동은 정부 권한을 수용하고 순순히 체포에 응하고 법정에 서는 것이었다. FBI는 이와 정반대로 행동한 브랜치 다비디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앞의 책 pp.65-66).
브랜치 다비디안은 ATF의 급습과 영장 집행 시도를 개인의 자유와 관련한 규범의 위반이자 정부 권한의 과도한 사용으로 해석했다. 그러므로 ATF에 대한 공동체의 저항은 자기 보호를 위한 합법적인 행위였고 정부 기관의 바람대로 체포돼 법정에 서는 건 전혀 합당하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브랜치 다비디안 주민들은 자신들이 신의 왕국(God’s Kingdom)이 도래하기 전 최후의 날들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향후 심판에 직면하게 될 세속적인 권력에 협력할 동기가 없었다 (앞의 책 p.66).
협상에서 드러난 세계관 갈등
협상 과정에서 교환된 말을 보면 양측이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립했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례로 FBI는 아이들을 우선 보호 대상으로 보고 그들의 ‘탈출’을 첫 목표로 삼았다. 브랜치 다비디안은 이에 대한 대가로 지도자인 데이빗 코레시(David Koresh) 연설의 방송을 요구했다. 브랜치 다비디안은 공동체가 ATF의 임박한 공격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알리고 자신들이 직면한 상황을 미국인들에게 직접 설명하기 위해 이 거래를 선택했다. 또한 공동체가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봉쇄로 공동체가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부모들의 결정에 따라 아이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거래의 결과로 일부 아이들은 공동체 밖으로 내보내졌다 (앞의 책 pp.163-164).
양측은 위험 인식에 대한 차이를 드러냈고 이 차이는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FBI는 브랜치 다비디안 공동체가 아이들에게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브랜치 다비디안 주민들은 바깥 세계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인식했다. 그들은 바깥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종교적으로 금지된 음식이 제공되고, 아이들이 심리학자들과 사회복지사들의 감시에 둘러싸이고, 세상의 유해한 영향에 노출되는 걸 두려워했다. 때문에 협상 초기에 일부 아이들을 내보낸 뒤 더는 아이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앞의 책 pp.176-177).
이후 어려운 협상이 뒤따랐고 이를 통해 FBI와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 차이가 보다 확실하게 드러냈다. FBI는 일부 아이들의 ‘탈출’ 후 이번에는 여성과 아이들을 함께 내보내라고 요구했고 이를 통해 다시 두 개의 세계관이 충돌했다. FBI는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그리고 동시에 거래 카드(barganing chip)로 보았다. 또한 여성들이 지도자인 코레시의 ‘협박’ 내지 ‘강요’로 인질처럼 잡혀있다는 생각으로 이 여성들을 내보내는 결정을 하라고 촉구했다. FBI는 브랜치 다비디안 사례가 다른 인질 사례와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다른 한편 인질 구출 작전에서 얻은 경험을 그대로 적용했다.
브랜치 다비디안과 코레시는 이런 FBI의 인식과 주장에 반발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공동체 주민 중 누구도 협상 카드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각 개인을 독립적 결정권을 가진 도덕적 행위자(moral agent)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레시는 FBI 협상가들에게 “난 그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 스스로 원하면 그렇게 할 수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FBI가 일부 아이들을 내보낸 것처럼 결정을 내릴 것을 요구하자 코레시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부모들이 결정을 내렸지만 성인 여성들은 다르다고 말했다. FBI가 여성들을 아이들과 함께 내보내는 결정을 하라고 거듭 요구하자 코레시는 급기야 “그만두자. 이 게임을 하고 싶지 않다”며 협상을 거부했다 (앞의 책 pp.174-176).
FBI는 여성들을 인질로, 그리고 결정권을 박탈당한 연약한 존재로 인식했지만 브랜치 다비디안 공동체에서 여성들은 그런 위치에 있지 않았다. FBI의 세계관은 오랫동안 자주 경험한 인질 상황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었고,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은 스스로 선택한 종교 공동체 생활을 통해 형성된 것이었다. 두 개의 세계관은 강하게 충돌했고 협상 실패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으며 결국 비극적 결말을 야기했다.
와코 사건 협상은 두 가지를 말해준다. 하나는 세계관의 차이가 갈등 해결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이다. 양측은 세계관 차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며 그 결과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세계관 차이가 힘의 불균형 상황과 결합할 때 생기는 갈등 해결의 어려움이다. FBI의 세계관은 미국 주류 사회의 세계관이었고 때문에 협상에서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다른 한편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은 종교적으로 이단적이고 또한 반사회적으로 여겨져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때문에 브랜치 다비디안은 자신의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FBI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FBI는 사회적 지지를 업고 자기 세계관을 유지하고 브랜치 다비디안에게 이의 수용을 압박했다. 이는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는 세계관 차이로 인한 어려움이 당사자들에게 동등한 어려움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힘이 적은 당사자는 대화와 협상에서 자기 세계관을 주장하고 설명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주목할 건 FBI는 우월적 위치에서 자기 세계관을 유지하고 부과하는 데 상대적으로 덜 어려움을 겪었지만 브랜치 다비디안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해 결국 자신들의 목표인 인명 구조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브랜치 다비디안 또한 FBI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했고 적극적으로 인정하지도 않아 효율적인 협상을 하지 못했다. 양측 모두 세계관 차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고 여기에 힘의 불균형 상황까지 존재해 협상이 어려워졌고 대치 상태가 해결되지 못했다.
갈등 해결의 열쇠, 세계관의 상호 인정
와코 사건 분석을 통해 도처티가 주장하는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갈등 해결을 모색할 때, 또는 본격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진행할 때 세계관 차이가 있는지,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우선 탐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관 차이는 결국 당사자들의 현실 인식에 대한 것이므로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으면 대화와 협상을 통한 갈등 해결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다. 도처티에 따르면 당사자들의 세계관이 완전히 달라서 대립적일 때 당사자들은 우선 자기 세계관에 기반한 각자의 현실을 두고 협상(현실 협상/negotiating reality)을 하게 되고 이 협상이 성공적으로 일단락되면 구체적 갈등 사안에 대한 협상(이슈 협상/issue-specific negotiation)을 할 수 있게 된다. 당사자들은 갈등 진행 내내 이런 현실 협상과 이슈 협상을 오가면서 갈등을 다루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세계관 차이가 갈등에 원인을 제공하고 이것이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와 협상에 걸림돌이 되는 사례는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가 사회갈등으로 진화했을 때 자주 나타난다. 원자력발전소 안전과 건설, 차별금지법 제정, 낙태법 제정, 젠더 갈등, 존엄사, 기후변화 대응 및 재생에너지 확대 방안 등이 모두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되고 세계관이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갈등이다. 이런 사회갈등은 정치 및 이념을 둘러싼 세계관과도 관련되어 있어서 세계관 차이를 다루지 않고는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의 시작조차 힘들다.
대형 사회갈등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 간 갈등도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모든 갈등은 결국 당사자들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고 다만 당사자들이 세계관을 공유하느냐,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세계관 차이로 인한 갈등은 많을 수밖에 없다. 가족 내 가부장 제도 및 문화와 그에 따른 성역할과 관련해 발생하는 가족 구성원 간 갈등, 직장 내 회식 문화나 집단 활동을 둘러싼 집단주의 성향 문화와 개인주의 성향 문화 간 충돌과 관련된 갈등, 성역할 및 성평등과 관련해 청년 집단에서 생기는 대립 등이 모두 세계관 차이와 관련되어 있다.
이런 갈등은 세계관 차이와 관련되어 있지만 모두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해결해야 할 현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관 차이를 다루지 않고는 현안 논의와 해결 모색이 불가능하다. 결국 관건은 어떻게 세계관 차이를 뛰어넘어 현안에 대한 대화와 협상을 시작할 상황을 만드느냐다. 이에 대한 접근을 설명한 것이 앞서 언급한 현실 협상과 이슈 협상이다. 갈등 당사자들은 실질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선 자신들의 세계관이 전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세계관과 관련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나아가 상대의 다른 세계관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런 상호 존중과 인정이 있어야 세계관 차이를 염두에 두고 해결해야 할 현안을 논의할 수 있다. 세계관 차이는 현안 논의 중에도 시시때때로 등장하고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그런 상황이 억압이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세계관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느냐는 결국 얼마나 잘 세계관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상대의 세계관을 존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