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부사장이(지금은 보직에서 물러났지만) 만든 경이로운 일인 '땅콩 리턴'이 연일 톱뉴스가 되고 있다. 뉴스 제목은 '땅콩 리턴'이지만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은 부사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이었다. 그녀는 승무원의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며 고함을 지르고 결국 기내 서비스와 업무를 책임지는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다. 직장에서 일하던 직원에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집에 가라고 한 셈이다. 비행기는 사무장을 내려 놓기 위해 결국 되돌아가 '땅콩 리턴' 사태를 빚었고 승객들은 불안해했다. 이 일에는 서비스, 직원 처우, 승객 안전 세 가지 문제가 얽혀 있다. 그 중 핵심은 서비스다. 그날 부사장이 다른 일로 심기가 불편해서 과잉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가 표면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어쨌든 서비스다. 회사의 임원인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비스였고, 서비스 품질을 위해서는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해도 된다는 것이 그녀의 인식이었다.
한국의 고객서비스는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살 때는 한국의 고객서비스를 그리워했던 적도 있었다. 냉장고를 고친 사람이 냉장고까지 청소해주고, 커피숍에서는 손님의 돈까지 존대해주고, 고객의 욕설도 겸손함과 인내로 다 받아주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협소하고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견과류를 제공하는 사소한 일에조차 최상의 서비스를 담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최고다. 그런데 문제는 ''땅콩 리턴'이 보여준 것처럼 고객서비스가 노동자들의 인권보다 우선된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주는 서비스를 위해서라면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폭력적인 직장 환경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이고 많은 직장인들이 그런 폭력적 구조와 문화를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땅콩 리턴'에게 관심도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이에 못지 않은 일이 최근 벌어진 서울 시립교향악단 대표의 직원들에 대한 폭언 사건이다. 그녀 역시 직원들에게 고성을 지르고 모욕감을 주는 말들을 내뱉었다. 그리곤 그것이 결국 서울 시향의 문제점들을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변명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미생'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나온다. 상사들은 일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또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하 직원들에게 폭언과 인격 모독, 심지어 폭행까지 서슴치 않는다. 부하 직원들은 그런 폭력적 구조와 문화를 묵묵히 참아낸다. 심지어 후배들에게 꾹 참는 것이 직장 생활을 하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충고까지 한다. 그들이 아주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런 충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생활을 더 경험한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폭력적 구조와 문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직장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대응하는 돈을 받는 곳이지 인격과 인권까지 거래하는 곳은 아니다. 기업주나 업주는 노동력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일을 핑계로 직원의 인격을 모독하고 인권까지 짓밟을 권리는 없다. 그런데도 직장은, 그리고 상사들은 노동력에 대한 권리뿐만 아니라 가당찮게도 한 인간의 존재와 삶 전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한국 직장의 폭력문화는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라는, 또는 사람보다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직원의 인격쯤은, 또는 직원에 대한 폭력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을 모두 아우르고 합리화시키는 최고봉은 서열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한국 문화다. 사실 직위나 나이를 빌미로 폭행, 폭언, 인격 모독, 심지어 성추행까지 합리화시키는 일은 너무나 흔하다. 찌질하게는 점심 메뉴 선택부터 크게는 양심과 관련된 문제에까지 직위나 나이는 흔히 압력의 수단으로 악용된다. 직위와 나이가 무한 권력이 되는 문화인 것이다.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빠른' 또는 '늦은' 등을 가려 형-동생 관계를 만들 정도니 기가 차는 서열 문화다. 무서운 것은 이런 서열 문화와 맹목적 수용이 한국문화의 미덕이나 예의라는 이름으로 유치원에서부터 강요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서열 문화는 사실 예의와는 무관한 것이다. 그것이 예의가 되려면 나이와 직위를 따지되 상호 존중과 배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서열을 따지는 이유는 자신이 위면 무한 권력을 행사하고 아래면 무한 복종을 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폭력적 서열 문화가 직장의 폭력 문화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수용하고 복종하도록 직장인들에게 압력을 넣는 것이다. 결국 직장의 폭력문화가 사회와 괴리돼 있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수용되고 강요되는 것이다.
어쨌든 다시 '땅콩 리턴'으로 돌아가보자. 솔직히 대한항공의 서비스는 좀 과한 면이 있다. 때로는 민망할 정도다. 몇 십년 전에는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한정돼 있었다. 시센 말로 VIP들이나 그에 버금가는 사람들이 주로 비행기를 이용했다. 그런데 이제 비행기는 그저 하늘을 나는 대중교통일 뿐이다. 그런데도 대한항공은 승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른 항공사와 차별화되는, 즉 과한 서비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늘씬한 승무원들이 말쑥하게 차려입고, 서비스 종류에 따라 옷도 갈아 입으며, 승객에게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응대한다. 이코노미 클래스 서비스가 이 정도고 비지니스나 퍼스트 클래스에선 물론 더할 것이다. 뭐 하늘을 나는 호텔을 만들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지나치다보니 자연스럽지 않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커피숍 직원이 손님에게 주는 거스름 돈에도 존칭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승무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예쁘장하고 예의바른 서비스 직원의 모습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전문직업인의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한국 비행기를 타면 외국 항공사 승무원들의 자신만만하고 승객과 편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그리워지곤 했다. 어쨌든 폭력 문화로 다듬어지고 체계화된 서비스는 사양하고 싶다. 비행기는 국제 대중교통인데 그냥 대중교통 서비스 정도면 된다. 대신 안전에만 신경 써주면 한 마디로 '땡큐'다.
대한항공 부사장이(지금은 보직에서 물러났지만) 만든 경이로운 일인 '땅콩 리턴'이 연일 톱뉴스가 되고 있다. 뉴스 제목은 '땅콩 리턴'이지만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은 부사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이었다. 그녀는 승무원의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며 고함을 지르고 결국 기내 서비스와 업무를 책임지는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다. 직장에서 일하던 직원에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집에 가라고 한 셈이다. 비행기는 사무장을 내려 놓기 위해 결국 되돌아가 '땅콩 리턴' 사태를 빚었고 승객들은 불안해했다. 이 일에는 서비스, 직원 처우, 승객 안전 세 가지 문제가 얽혀 있다. 그 중 핵심은 서비스다. 그날 부사장이 다른 일로 심기가 불편해서 과잉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가 표면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어쨌든 서비스다. 회사의 임원인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비스였고, 서비스 품질을 위해서는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해도 된다는 것이 그녀의 인식이었다.
한국의 고객서비스는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살 때는 한국의 고객서비스를 그리워했던 적도 있었다. 냉장고를 고친 사람이 냉장고까지 청소해주고, 커피숍에서는 손님의 돈까지 존대해주고, 고객의 욕설도 겸손함과 인내로 다 받아주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협소하고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견과류를 제공하는 사소한 일에조차 최상의 서비스를 담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최고다. 그런데 문제는 ''땅콩 리턴'이 보여준 것처럼 고객서비스가 노동자들의 인권보다 우선된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주는 서비스를 위해서라면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폭력적인 직장 환경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이고 많은 직장인들이 그런 폭력적 구조와 문화를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땅콩 리턴'에게 관심도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이에 못지 않은 일이 최근 벌어진 서울 시립교향악단 대표의 직원들에 대한 폭언 사건이다. 그녀 역시 직원들에게 고성을 지르고 모욕감을 주는 말들을 내뱉었다. 그리곤 그것이 결국 서울 시향의 문제점들을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변명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미생'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나온다. 상사들은 일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또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하 직원들에게 폭언과 인격 모독, 심지어 폭행까지 서슴치 않는다. 부하 직원들은 그런 폭력적 구조와 문화를 묵묵히 참아낸다. 심지어 후배들에게 꾹 참는 것이 직장 생활을 하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충고까지 한다. 그들이 아주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런 충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생활을 더 경험한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폭력적 구조와 문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직장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대응하는 돈을 받는 곳이지 인격과 인권까지 거래하는 곳은 아니다. 기업주나 업주는 노동력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일을 핑계로 직원의 인격을 모독하고 인권까지 짓밟을 권리는 없다. 그런데도 직장은, 그리고 상사들은 노동력에 대한 권리뿐만 아니라 가당찮게도 한 인간의 존재와 삶 전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한국 직장의 폭력문화는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라는, 또는 사람보다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또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직원의 인격쯤은, 또는 직원에 대한 폭력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을 모두 아우르고 합리화시키는 최고봉은 서열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한국 문화다. 사실 직위나 나이를 빌미로 폭행, 폭언, 인격 모독, 심지어 성추행까지 합리화시키는 일은 너무나 흔하다. 찌질하게는 점심 메뉴 선택부터 크게는 양심과 관련된 문제에까지 직위나 나이는 흔히 압력의 수단으로 악용된다. 직위와 나이가 무한 권력이 되는 문화인 것이다.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빠른' 또는 '늦은' 등을 가려 형-동생 관계를 만들 정도니 기가 차는 서열 문화다. 무서운 것은 이런 서열 문화와 맹목적 수용이 한국문화의 미덕이나 예의라는 이름으로 유치원에서부터 강요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서열 문화는 사실 예의와는 무관한 것이다. 그것이 예의가 되려면 나이와 직위를 따지되 상호 존중과 배려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서열을 따지는 이유는 자신이 위면 무한 권력을 행사하고 아래면 무한 복종을 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폭력적 서열 문화가 직장의 폭력 문화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수용하고 복종하도록 직장인들에게 압력을 넣는 것이다. 결국 직장의 폭력문화가 사회와 괴리돼 있지 않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수용되고 강요되는 것이다.
어쨌든 다시 '땅콩 리턴'으로 돌아가보자. 솔직히 대한항공의 서비스는 좀 과한 면이 있다. 때로는 민망할 정도다. 몇 십년 전에는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한정돼 있었다. 시센 말로 VIP들이나 그에 버금가는 사람들이 주로 비행기를 이용했다. 그런데 이제 비행기는 그저 하늘을 나는 대중교통일 뿐이다. 그런데도 대한항공은 승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른 항공사와 차별화되는, 즉 과한 서비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늘씬한 승무원들이 말쑥하게 차려입고, 서비스 종류에 따라 옷도 갈아 입으며, 승객에게 눈을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응대한다. 이코노미 클래스 서비스가 이 정도고 비지니스나 퍼스트 클래스에선 물론 더할 것이다. 뭐 하늘을 나는 호텔을 만들고 싶은지는 모르겠으나 지나치다보니 자연스럽지 않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커피숍 직원이 손님에게 주는 거스름 돈에도 존칭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승무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예쁘장하고 예의바른 서비스 직원의 모습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전문직업인의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한국 비행기를 타면 외국 항공사 승무원들의 자신만만하고 승객과 편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그리워지곤 했다. 어쨌든 폭력 문화로 다듬어지고 체계화된 서비스는 사양하고 싶다. 비행기는 국제 대중교통인데 그냥 대중교통 서비스 정도면 된다. 대신 안전에만 신경 써주면 한 마디로 '땡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