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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왜곡, 전쟁의 왜곡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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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전쟁의 부재’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평화는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폭력의 부재로 설명된다. 그럼에도 전쟁은 가장 광범하고 심각한 폭력으로 평화 성취와 관련해 반드시 다뤄야 할 문제로 여겨진다. 초기 평화 연구자들이 전쟁 예방에 몰두했던 건 전쟁, 그리고 전쟁 가능성의 부재를 개인과 집단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기본적인 전제조건으로 인식했기 때문이고 우리가 직면한 현재의 상황은 당시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은 평화와 함께할 수도 평화의 수단으로 언급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공공연하게 왜곡된 평화가 언급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한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은 ‘힘을 통한 평화’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이론적으로는 물론이고 현실적으로도 전혀 설득력이 없는 궤변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겪은 수많은 전쟁은 물론 현재 세계에서 진행 중인 전쟁 또한 이런 주장이 사실의 심각한 왜곡이자 의도적으로 진실을 숨기려는 시도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힘에 의한 승리와 항복은 있지만 어느 전쟁도 평화에 기여하지 않고 한 국가 내 집단 간, 또는 국가 간 관계를 파괴하고 증오와 복수심에 기반한 적대 관계를 심화시킨다. 그 결과 세계와 각 사회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게 된다.

 

정치인들이 ‘힘을 통한 평화’를 주장하며 전쟁까지 할 수 있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왜곡된 평화를 수용하거나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 밑바탕에는 전쟁 영향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전쟁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될 거란 이기적인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공동체 간, 국가 간 평화적 공존을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전쟁이 국가, 그리고 국민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경우는 없으므로 이는 자기 사회의 분열, 파괴, 비평화를 승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 미국, 이스라엘은 물론 침략을 당한 후 적극적으로 종전을 모색하지 않은 우크라이나와 이란 모두 비슷한 상황을 겪었거나 겪고 있다. 규모와 수준은 다르지만 이들 국가의 군과 민간의 인명 피해, 국제 신뢰 추락, 국내 경제 타격, 빈곤층 증가, 사회 분열, 민주주의 파괴 등은 ‘힘을 통한 평화’가 어떤 근거와 증거도 없는 궤변임을 잘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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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왜곡은 전쟁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전쟁은 힘을 통한 평화의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실행으로 여겨지고 전쟁이 야기하는 치명적인 문제들은 간과된다.

 

전쟁의 왜곡 중 가장 심각한 건 전쟁을 일반적인 정치나 외교 사건 중 하나로 취급하는 것이다. 전쟁은 국제사회가 약속한 유엔 헌장에도 언급된 것처럼 문제 해결 수단이 아님에도 전쟁을 시작한 정치인들은 전쟁을 문제 해결과 평화를 위한 정치적, 외교적 선택으로 포장한다. 이는 전쟁의 의도적 왜곡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이런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각국의 국민들, 그리고 세계인들 또한 전쟁을 정치와 외교의 연장으로 여기곤 한다. 이들은 전쟁이 야기하는 문제를 다른 정치적 사건이 야기하는 문제와 다르지 않게 취급한다.

 

전쟁의 또 다른 왜곡은 전쟁을 군사적 문제인 것처럼 다루는 것이다. 전쟁의 목표는 군사적 수단으로 상대를 압박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고 이를 위해 적 국가 또는 사회의 군사시설에 대한 공격이 이뤄진다. 전쟁의 기본적 원칙과 국제법의 핵심은 전쟁 중에도 민간인과 민간 시설은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쟁은 없다. 모든 전쟁이 민간인과 민간 시설 피해를 야기하고 초기에 군사시설만 타격했던 전쟁도 결국 고의 또는 부주의를 가장한 전략적 선택을 통해 민간 시설을 겨냥한다. 그 결과 모든 전쟁에서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대규모 사회 파괴로 인해 많은 이주민과 난민이 발생한다.

 

전쟁의 왜곡을 강화하는 건 전쟁 관련 담론이다. 심각한 민간 피해는 전쟁 종식에 가장 큰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전쟁 시작과 함께 범람하는 분석과 담론은 정치적 선택, 전쟁의 정당성, 자위권 성립 여부, 경제적 영향, 국제 정치 등과 관련된 문제들, 그리고 전쟁을 통해 원인을 제공한 문제가 해결될 것인지, 어느 국가와 정치인이 이익을 얻을 것인지, 어떤 무기가 효율적인지 등에 맞춰진다. 직접 피해에 노출된 사람들의 생명과 안위는 놀라우리만큼 쉽게 외면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한국에 미칠 경제적 영향, 한국이 취할 정치적 입장,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 등이 언급되곤 한다. 이 모두는 전쟁으로 생명의 위협과 삶의 기반 파괴에 직면한 사람들의 상황을 외면하는 매우 비인도적이고 비윤리적인 접근이지만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작다.

 

전쟁에 대한 심각한 왜곡은 언론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언론은 전쟁과 관련해 정치적 해석, 편향적 국제 정치, 특정 국가나 세력에 대한 편견, 강대국의 일방적 주장 등에 기댄 보도를 하곤 한다. 특정 국가나 세력에 유리한 선택적 보도를 하거나 전쟁이 야기한 인명 피해, 사회 파괴, 이주민과 난민 발생 등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취급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 일부 언론의 경우 일방적으로 침략국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입장을 대변하고 전투와 군사 전략, 막강한 화력을 가진 무기, 한국 무기 수출 증가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보편적 인도주의와 인류의 도덕성을 외면한 보도를 하기도 한다. 이런 언론 보도는 전쟁의 왜곡은 물론 언론 소비자 인식의 왜곡을 야기한다.

 

평화의 왜곡과 전쟁의 왜곡은 세계적 주목을 받는 대형 전쟁이 계속되는 시대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지만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그 선두에는 전쟁과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어 정치적 이익을 얻거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려는 정치인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건 그들이 궤변을 계속할 수 있는 건 많은 사람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고 그 결과 전쟁의 피해가 늘고 세계 평화에 대한 위협 또한 심화한다는 점이다.


* 위 글은 2026년 6월 30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orea)의 <글리온 회의 40주년 평화신학포럼>에서 발제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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