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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축과 비핵화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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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 증강에 몰두하는 세계

인류의 공동 목표는 모든 개인, 집단, 사회, 국가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들의 역할도 평화적 공존의 세계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평화적 공존이 지속적으로 위협받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개인, 집단, 국가 차원의 폭력이 확산하고 특히 대형 전쟁을 포함한 무력 분쟁(armed conflict)이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평화적 공존의 세계에 대한 희망을 이어갈 수 있을지, 평화적 공존의 세계를 만들 수단이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그런데 이것이 세계가 함께 만든 상황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생각한다면 수단 또한 세계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무력 분쟁 및 평화적 공존 위협과 관련해 불가피하게 언급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바로 오늘 이 세션의 주제인 군축과 비핵화다. 이는 평화적 공존의 세계를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수단이다. 이것이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무기와 군사력은 평화의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군비 증강은 그 자체로 위협이고 문제해결이나 평화 성취가 아닌 승자에 의한 강압과 억압, 그리고 관계의 파괴와 증오의 확산을 가져올 뿐이다.

 

절실하게 평화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세계는 군축이 아닌 군비 증강으로 선회하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조 8,870억 달러(한화 약 4,041조 8,000억 원)로 2024년보다 2.9% 증가했다. 이는 한국의 2026년 정부예산의 5.5배가 넘는다. 세계 군사비는 지난 11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전대미문의 펜데믹 상황에서도 군사비 지출은 증가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후에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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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세계 군사비 지출 현황(사진 출처: UN 사무총장 보고서 The Security We Need)


군비 증강은 두 가지 면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하나는 세계가 외교를 통한 문제해결의 원칙을 외면하는 건 아니지만 비대칭 전력을 통한 압박과 강요를 실효성 있는 선택지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의 평화적 공존에 실질적인 위협이다. 다른 하나는 군비 증강을 위한 군사비 지출 증가로 국내 및 세계 문제에 대응할 재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는 펜데믹 상황에서 한국, 칠레 등 몇몇 국가들이 군사비 일부를 펜데믹 대응 비용으로 돌렸고 브라질, 러시아 등 몇몇 국가들은 예산보다 적은 군사비를 지출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정된 정부 지출에서 높은 군사비 지출이 다른 분야 지출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또 다른 사례는 지난 몇 년 동안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군사비 지출은 계속 증가했고 개발도상국 지원은 대폭 줄었다는 점이다. 이 또한 군사비 증액이 계속되면 개발도상국의 보건과 빈곤 퇴치 지원은 앞으로 더 감소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2월 영국 정부는 개발도상국 지원을 감축해 군사비 지출 증액에 충당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증가한 군사비는 생명 보호를 보장하지 않지만 감소한 개발도상국 지원은 많은 생명 손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또한 지속적인 군사비 지출 증가는 결국 세계인의 안전과 행복을 저해하고 미래 세대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프레임 전환의 필요

군사비 지출 증액과 군비 증강을 정당화하는 기본적인 논리는 국가를 보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군사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력 강화가 반드시 국방을 보장하는 건 아니며 군사적 수단에 의존하는 국방이 국민 안전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군사력 강화는 적대관계를 강화하고 무력 대결과 충돌의 위험을 높이며 그 결과 국민은 지속적으로 안전을 위협받게 된다.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접근은 우호적인 정치적, 경제적 관계 형성과 교류와 상호 존중을 통한 무력 충돌의 예방이다. 또한 적극적인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무력 분쟁의 조기 종식이다. 이런 접근은 군사력이 아닌 평화적 공존의 가치를 인정하고 평화적 공존을 실현하려는 태도와 행동을 통해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와 군사력을 중심에 두는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에서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중심에 두는 인간 안보(human security)로의 프레임 전환이 필요하다.

 

군비 증강을 위한 군사비(military expenditure)는 ‘국방예산(defense budget)’이라는 언어를 통해 순화되고 쉽게 정당화된다. 군사비는 무기, 무력 충돌, 전쟁, 그리고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 등을 연상시키지만 국방은 국가 및 국민 보호와 안전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모든 국가의 국방예산은 무력 충돌과 전쟁에 대비한 군사력 유지 및 훈련, 무기 확보 및 유지, 나아가 군대 및 무기의 실전 배치를 위한 것이다. 이는 국방예산이 결국 대다수 사회 구성원이 원하지 않는 무력 충돌과 전쟁, 군대 및 무기의 실전 투입, 그리고 사회 파괴와 인명 살상까지를 전제로 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국방예산에는 군대와 무기 체계 유지를 위한 정책 및 행정 비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것도 결국 군사 행동 실행을 위한 것이다. 국방예산이 사실상 군사비고 이것이 전쟁 실행과 살상 무기 구입 및 사용에까지 쓰이는 것이라면 비용의 규모와 지출에 대한 사회적 논의 및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국가도 이를 사회적 논의 주제로 삼지 않는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 없이 ‘국방예산’이라는 프레임 하에 평화적 공존을 위협하는 군사비 지출을 늘리고 있고 그 결과 세계의 군비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국방예산’에서 ‘군사비’로의 프레임 전환을 통해 사실을 직시하고 군사비 지출과 증액을 감시해야 한다.

 

핵무기 및 핵무장과 관련한 프레임 전환 또한 필요하다. 핵무기는 강대국의 상징이자 가장 강력한 군사적 억지력으로 언급되곤 한다. 그러나 많은 세계인이 존재하는 무기 중 가장 치명적인 핵무기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인해 우리 사회의 여론은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 국민의 핵무기 개발 찬성 비율이 항상 최소한 과반 이상임을 보여주었다. 최근의 것으로 세계일보가 올해 2월 1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핵무기 개발·보유’에 찬성한 비율은 18%,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더라도 생산 능력을 갖추는 ‘핵잠재력 보유’에 찬성하는 비율은 45%였다. 둘 다 결국 핵무기에 찬성하는 것으로 둘을 합한 비율은 63%였다. 사상계 7·8월호에 게재된 조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는 비율은 ‘매우 동의’가 40.4%, ‘어느 정도 동의’가 43.1%로 합해서 83.5%였다. 이렇게 높은 찬성 비율은 우리 사회가 핵무기를 강력한 군사적 억지력이자 북한 핵무기에 대응하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핵무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경계심이 매우 낮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여론조사 결과는 많은 사람이 북한의 핵무기를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안전 보장 수단을 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핵무기는 안전 보장 수단이 아니라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높여 오히려 우리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다. 무엇보다 핵무기는 어느 국가가 보유하든 세계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세계의 평화적 공존을 위협한다. 우리 사회의 상황이 달라졌다고 핵무기가 대량살상 무기가 아닌 안전 보장 수단이 되는 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핵무기가 최고의 군사적 억지력이고 안전 보장 수단이라는 프레임에서 핵무기가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무기라는 프레임으로의 전환이다.

 

군축과 비핵화, 순진한 상상?

전쟁이 세계를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도 군사비 지출 증가와 군비 경쟁이 가속되는 현실은 우리가 군축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많은 세계인이 핵무기에 반대하고 있음에도 핵무기 보유국들의 핵능력 개선 등 관련 비용 지출이 2025년에 크게 증가했고 핵무기 개발과 축적을 포기하지 않는 국가들이 존재하는 현실은 비핵화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군축과 비핵화 주장은 흔히 현실을 무시한 순진한 생각이자 상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비판과 조롱에 직면하곤 한다. 특히 남북 간 적대관계와 무력 대결이 고착화하고 사실상 핵보유국이 된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지속적 군사비 지출 증가는 국가 예산에 부담이 되고 군비 경쟁을 심화시켜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인다. 특히 주목할 건 군비 경쟁은 종착지가 없고 군사비 지출 증가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많은 사람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주장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비난하면서 자체 핵무기 보유를 지지하는 게 모순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는다.

 

군축과 비핵화를 순진한 상상으로 여기기 전에 우리가 생각할 건 우리 사회에서 군축과 비핵화를 다양한 관련 정보를 가지고 심도 있게 논의해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군축과 비핵화를 우리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현안으로 가져와 많은 사람이 한번은 깊이 생각하고 견해를 나눌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다른 많은 사회와는 다르게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상세한 정보에 무관심하고 핵무기에 대한 경계심이 지나치게 낮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경계심이 낮은 이유는 지난 80년 동안 우리 사회가 핵무기 개발이 인류에게 남긴 상처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항상 언급되는 건 태평양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핵무기 실험이 막대한 피해를 낸 점이다. 이 국가들은 1946년부터 1996년까지 태평양 섬들에서 300차례 이상의 핵무기 실험을 했고 그 결과 많은 섬나라 주민이 암을 포함한 각종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막대한 환경 파괴도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기 실험 지역에서도 많은 주민이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핵무기는 이런 인명 피해와 환경 파괴를 통해 얻어진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핵무기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이런 사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낮은 경계심을 설명하는 또 다른 예는 일본의 원자폭탄 피해에 대한 것이다. 일본과의 역사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웃 국가가 경험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피해에 대한 무관심은 인류애와 인류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볼 수밖에 없다. 특히 해마다 전 세계가 이를 인류의 비극적인 역사로 기억하며 함께 추모한다는 점, 그리고 많은 조선인 또한 피해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군축과 비핵화는 어려운 주제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면 피하지 않아야 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 이 글은 2026년 9월 10일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국제 에큐메니칼 평화대회 ‘군축과 비핵화’ 세션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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